[BS광장] 누구를 위한 상생금융인가

내수 부진이 길어지면서 금융당국의 상생금융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에는 카드사들이 앞장서는데 본업 경쟁력을 잃은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일방적인 상생금융 압박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10일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감독원, 여신금융협회와 9개 카드사가 한자리에 모였다. 소상공인 점포와 전통시장 이용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9개 카드사는 올해 동행축제에 참여해 금융당국이 주도하는 상생금융에 함께한다.

 

동행축제는 중기부에서 주관하는 대규모 소비 촉진 행사다. 올해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판로 확대와 내수진작 차원에서 계절별로 총 4회(3·6·9·12월) 진행한다. 지난달에는 온라인 중심의 미리 온 동행축제를 개최했다. 카드업계는 이번 MOU를 통해 전통시장, 소상공인 점포에서 캐시백 할인과 포인트 적립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전통시장 소비 진작을 위한 특화카드도 출시하고 마케팅 프로모션에도 동참한다.

 

카드사들은 어려운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마련된 자리의 취지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수익성 악화로 고민이 깊어진 카드업계에선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카드업계는 3년마다 이뤄졌던 카드수수료율 인하로 본업 경쟁력을 사실상 잃어버린 상태다. 카드수수료를 통해 얻는 수익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 카드수수료율이 또 한 차례 인하하면서 연간 3000억원의 수익 감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본업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카드사들은 카드론으로 눈을 돌렸다. 여기에 희망퇴직 및 배당금 감소 등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에 이 부분도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금융당국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을 명목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상치인 3.8% 내에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카드론 증가율을 잔액 대비 3~5% 내외로 관리해야 한다.

 

수익성과 영업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금융당국 주도의 상생금융에 동참하고 있지만 아쉬운 반응이 나온다. 정부 주도의 소비 진작 정책의 경우 공공사업이기 때문에 실적 개선에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말 그대로 상생금융이기 때문에 카드사들이 이익을 바라고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은 아니다. 카드사들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업계의 충분한 의지가 반영되긴 어렵다. 각 카드사가 개별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이 일방적으로 상생금융을 추진하다 보니 9개 카드사 중 일부만 지난달에 참여했다. 나머지 카드사들은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MOU를 체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 주도의 상생금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에도 카드사들이 총 1조5300억원 규모의 상생금융 프로그램을 지원한 바 있다. 카드업계에선 올해는 과거와 같은 금융 지원을 하진 않아 부담은 덜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금융당국 주도의 상생금융에 모두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상생금융의 효과에서도 의문이 남는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비상계엄 이후 위축된 소비심리는 지금까지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의 파면으로 전환점을 맞이했지만 소상공인들이 체감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더군다나 동행축제는 홈플러스와 함께 특별판매전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최근 기업회생 절차를 밟으며 무산됐다. 동행축제 일정에 차질을 빚으며 일부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예상된다. 또한,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누릴지도 미지수다.

 

상생금융은 말 그대로 금융사와 소비자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의 상생금융은 일방적인 희생만 강조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금융사와 소상공인 누구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융사와 소비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방향이 진정한 상생금융의 길이다.

 

최정서 기자 adien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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