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광장] 횡령사고 또 터지면 행장·회장 연임 꿈도 꾸지 마라

세계비즈 오현승 기자

 잊을 만하면 은행권 횡령 사고다. 업무상 배임도 발생했단다. 편집회의에선 금융사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짚는 기획물을 만들어야 한다고 경제부를 다그친다. 금융권 내 대형 이슈다 보니 뭉개버릴 수도 없다. ‘얼마 전에 같은 주제를 다룬 것 같은데?’란 생각과 함께.

 

 매번 금융사고 방지책이 쏟아진다. 거론되는 또는 시행 중인 방안 가운데 정답이 아닌 걸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다. 준법 부서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느니, 명령휴가제나 순환보직제를 강화해야 한다느니, 임직원 윤리 교육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느니 모두 옳은 얘기다. 금융사고가 발생한 금융회사엔 기관 제재 수위를 높이고 범법자의 처벌 수위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이러한 조처들을 실행할 최고경영자(CEO)의 의지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금융회사 CEO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반복되는 횡령·배임 사고를 보면 역시 구호뿐이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CEO로서 내부통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면 이를 실천할 강력한 의지를 보이라. CEO 연임 여부를 심사할 때 재임 시 발생한 횡령이나 배임 등의 금융사고에 대해 페널티(감점) 조항 부여를 강제하는 게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은행 또는 회장이 직접 나서 내부 규정을 바꾸라. 이사회에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는 회장님 연임엔 문제없다”는 식의 목소리가 나와선 안 된다.

 

 물론 횡령·배임액이 극미하거나 금융사고 빈도가 잦지 않다면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을 CEO에게 묻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사고 금액이 많고 자주 발생하고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최근 들어 백억원대 횡령 사고 발생액이 크게 늘었다. 오랜 기간 이뤄진 횡령 또는 배임 사고를 적발하지 못한 건 더욱 문제다. 이는 시스템 실패다. CEO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장기간에 걸쳐 천문학적 규모의 횡령 사고가 발생한 BNK경남은행과 우리은행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특히 시중은행 가운데 유독 우리은행에서 내부통제 부실 사례가 많은 점은 그간 CEO의 재발 방지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대규모 금융사고는 비단 은행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게 아니다. 은행의 영업 및 운영위험 손실을 키워 재무건전성도 악화시킨다. 최근 약 5년 새 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고 규모는 1500억원이 넘는데 회수율은 채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부통제 실패로 은행 돈이 대부분 손실 처리되고 있다는 셈이다. 금융소비자, 주주, 임직원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반에도 큰 흠집을 남긴다. 이 때문에 ‘일정 규모를 넘는, 장기간, 반복된 금융사고가 발생했다면 CEO 선임 과정에서 감점을 부여한다’는 식의 엄격한 내규를 만들어야 하고 이는 CEO가 주도해야 한다. 현직 CEO라고 하더라도 차기 CEO 후보군에서 아예 제외시키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 시행을 통해 도입된 책무구조도에 기댈 필요도 없다. 책무 기술이 너무 단순하고 형식적이라면 말뿐인 책무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책무구조도는 은행장과 같은 계열사 CEO와 달리 금융지주 회장에겐 책임을 묻기 모호한 측면도 있다.

 

 유능한 CEO라면 철통 같은 내부통제 시스템을 구축해 실력을 뽐내면 된다. 이게 ‘현직 프리미엄’ 아닐까. 연임을 앞두고서 그간 치적을 포장하려고 홍보비 지출을 늘리지도, 악재를 밀어내려고 의미 없는 보도자료를 쏟아낼 필요도 없다. 

 

 금융은 신뢰로 먹고 산다. 신뢰를 잃어버리면 금융사의 존재 이유가 없다.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CEO라면 수장으로서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없다. 이런 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겠다며 자리만 탐내는 건 국내 금융업계의 큰 위험요소일 뿐이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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