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대 직장인 A씨의 지갑 상황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다. A씨는 “올해 연봉 인상 폭이 크지 않아 물가를 생각하면 연봉 삭감을 당한 수준”이라며 “월세, 식비 등을 내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데, 그것마저 쪼개서 저축까지 해야한다. 물가는 왜 이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한다. 또 다른 20대 직장인 B씨 역시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데, 사회초년생 월급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고정지출은 정해져 있는데, 차 살돈은 커녕 빚이나 안늘어나면 다행”이라며 동조했다.
지난해 4분기 실질 소득이 증가한 만큼 소비를 하지 않는 현상이 이어졌다. 통계청이 27일 발표한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평균 소득은 521만5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8% 늘었다. 이는 2023년 3분기(3.4%) 이후 6분기 째 오름세다. 물가 변동 영향을 제거한 실질 소득 증가율은 2.2%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90만 3000원으로 2.5% 증가해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처음으로 16분기 연속 증가했으나, 물가를 고려한 실질소비지출은 0.9%에 그쳐 침체된 내수 상황을 실감케 했다. 지출 항목을 보면 주거·수도·광열(7.6%), 음식‧숙박(5.1%), 오락‧문화(11.1%), 보건(6.2%) 등에서 지출이 증가한 반면 교통(-9.6%), 가정용품·가사서비스(-3.7%), 통신(-2.4%), 주류·담배(-3.4%) 등에서 주로 감소했다.
이지은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4.0%로 소비지출 증가율 2.5%보다 높은데, 2분기 연속 돈을 번 것보다 돈을 덜 썼다고 볼 수 있다”며 “소비지출 증가 폭이 둔화된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자동차 구입이나 가구, 통신 장비 등 내구재 위주로 소비지출이 다소 감소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개인이 실제로 소비나 저축에 쓴 것이 아닌, 세금이나 사회보험 등에 쓰인 돈을 뜻하는 비소비지출은 100만8000원으로 2.8% 늘었다. 경상조세(5.3%), 가구간이전(4.7%), 비영리단체로 이전(6.9%), 사회보험(2.5%) 지출은 증가했고, 이자비용(-9.4%)은 감소했다. 이처럼 시민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은 4.0% 증가한 420만 7000원을 기록했다.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130만 5000원으로 7.8%나 증가했고, 흑자율도 31.0%로 1.1%포인트 상승했다.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지출이 차지한 비중을 보여주는 평균소비성향도 2분기까지는 7분기 연속 증가했지만, 3분기(-1.3%포인트)에 이어 4분기에도 1.1%포인트 하락해 69.0%를 기록했다.
한편 소득 분위별로 살펴보면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21만3000원으로 3.0% 증가했고, 반대로 5분위 가구의 경우 1119만 9000원으로 3.7% 증가해 증가율 격차는 크지 않았다. 다만 2분위 가구(291만원)와 3분위 가구(440만 6000원)는 4.4%씩 증가했고 4분위 가구(634만 2000원)는 3.6% 올라 1분위 가구의 증가폭이 가장 낮았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138만6000원으로 8.0% 증가한 반면, 소득 5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489만8000원으로 0.3% 감소했다. 분위별 지출 차이는 특히 교통에서 격차가 컸는데, 1분위는 6.8%, 2분위는 20.4%, 3분위는 23.0%씩 증가한 반면 4분위는 16.2%, 5분위는 25.9%씩 감소했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사진 설명= 이지은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이 2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