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너지포럼]“탄소중립은 문명 대전환, 제조업 혁신 선행돼야”

탄소제로 앞당기려면 민관 합심해야…"韓 미래 걸렸다"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가운데)이 12일 중구 더 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열린 2021 세계에너지포럼에서 산업분야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대해 좌장으로 참석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2021.05.12.

[세계비즈=박정환·김진희 기자]  전세계적 아젠다인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산업 업종별 세부 포트폴리오와 전국민적 컨센서스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한국은 화석연료 의존도와 제조업 비중이 높은 만큼 제품 공정 부문에서 일대 혁신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일보와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12일 더플라자호텔 다이아몬드홀에서 개최한 ‘2021 세계에너지포럼’ 라운드테이블에선 안병옥 전 환경부차관,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최재철 전 외교부 기후변화대사,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이 참석해 산업 분야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좌장을 맡은 안병옥 전 차관은 “탄소중립은 문명의 대전환, 화석연료 문명에서 재생에너지 문명으로 대혁신을 의미한다”며 “기후정책이 곧바로 통상정책이 되는 현 시대에서 탄소중립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산업계의 미래,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화두인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세 정책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소영 의원은 “한국은 유럽 국가들보다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데, 국내 기업들의 배출계수가 유럽 기업의 1.5배 정도 된다”며 “특히 석탄 발전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큰 상황이라 발전 부문 포트폴리오부터 혁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통상과 무역과 여러 가지 경제 현안에 있어 기후위기, 탄소중립 이슈가 부각되면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며 “5월 중 탄소중립위원회가 발족하면 EU의 탄소국경조정세 대응 전략을 치밀하게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종호 교수는 “아직 우리 사회는 정치권과 산업계 모두 탄소국경조정세 대응을 위한 노력과 준비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미국이 EU의 탄소국경조정세 정책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은 현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 구조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최재철 전 대사는 탄소국경조정세 이슈를 두고 EU가 최근 경제위기 등으로 잃어버렸던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했다.

 

최 전 대사는 “중요한 것은 탄소국경조정세가 EU의 입장이지 국제사회의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EU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산업계 보호를 위해 탄소국경조정세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은미 본부장은 “EU의 탄소 기준은 지난 10~20년간 지속된 것인만큼 한국이 이를 충족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산업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선 중국 등보다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어 제품, 산업 경쟁력을 신속히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탄소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국내 산업계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전 대사는 “EU의 탄소국경조정세는 선진국과 개도국에 모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국내 산업계가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재생 에너지 확대와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기업, 국민들에게 정책적 배려와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정책은 더 이상 기후변화정책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경제 정책이 되고, 나아가 우리 산업의 생존전략이 되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아직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컨센서스가 부족한 데다 정치권에선 이를 정쟁화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산업계가 가장 원하는 것은 재생에너지 시장이 확대될 수 있는 기술 혁신, 지역경제 발전, 일자리 창출 등 선순환 방식인데 정부의 노력이 미진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산업계의 인식 전환도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필수 요소로 꼽혔다. 홍 교수는 “그동안 대기업을 포함한 국내 산업계는 재생 에너지 전환에 대해 수세적이고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해왔다”며 “전세계적으로 재생 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이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추진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차관은 “한국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탄소집약적 업종의 비중이 높아 부문별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탄소중립이라는 파고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업들은 기술혁신도 필요하지만 경영혁신 차원에서 굉장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같은 수출 주도형 성장 국가는 기존의 성장 방식을 대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은미 본부장은 “시멘트나 화학 부문의 경우 제품 고정에 사용되는 원료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공정 부문에선 확실한 변화를 꾀할 수 있다”며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소재와 제품의 혁신, 공정의 대전환뿐만 아니라 관련 제품을 적극 생산하는 것도 주요 대응 전략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소영 의원은 ‘탈탄소사회 이행 기본법안’과 비슷한 여러 안들이 함께 병합 심사되고 있으며 탄소중립 법제화, 거버넌스 구성, 기금 마련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그동안의 산업, 에너지 정책은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싸게 공급해서 산업을 떠 받칠 것이냐’의 관점에서 추진돼 왔다”며 “향후 산업, 에너지 부문 법안 마련과 정책 추진에서 탄소중립의 우선 순위가 더욱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공적인 탈(脫) 탄소 실현을 위해 전 사회적인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홍종호 교수는 “향후 10년은 국내 경제의 명운을 가를 결정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며 “정치권과 기업, 학계, 시민사회가 혼연일체가 돼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안 전 차관은 “탄소중립이라는 문명의 대전환을 이루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30여년에 불과하다”며 “과거 우리가 해왔던 사고와 행동방식, 제도를 뿌리부터 교정해야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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