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국 혼란이 소상공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가뜩이나 내수가 최악의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기대했던 연말 특수까지 사실상 물건너갔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12일 “계엄선포는 통치행위”라며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는데, 이로 인해 향후 탄핵 정국이 길어질 경우 소상공인들은 소비 위축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관측된다.
◆탄핵 정국에 외식업 등 연말 대목 실종
최근 정국 불안으로 각종 모임이나 회식 등 연말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소상공인들의 경영부담이 커지고 있다. 서울 강북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현모씨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 밤, 손님들이 한 번에 모조리 빠져나가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손님이 다 가버렸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마감시간보다 훨씬 일찍 문을 닫아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폭등한 물가로 올해 매출이 많이 떨어졌는데, 이번 사태까지 겹치면서 영업 의지가 꺾였다”고 하소연했다.
지방 소상공인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부산 강서구에서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강모 씨는 “원래 주말이 피크인데 비상계엄 이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토요일은 평소보다 손님이 50% 줄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강씨는 이어 “원래 주말은 매출을 올리는 날인데 이젠 주말이 오는 게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젊은층이 자주 찾는 대학가는 연말 대목이 사라졌다. 서울 소재 한 여대 교수는 “학생들의 정치 참여를 응원하는 차원에서 한 차례 ‘줌(Zoom)’으로 화상수업을 진행했다. 2학기는 조기에 종강하기로 했다”면서 “윤 대통령의 행태에 분노한 학생들이 연이어 집회에 참여하면서 학교 근처 상권은 당분간은 활기를 띠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군부대 주변의 상권도 침울하긴 마찬가지다. 충청도 소재 한 부대에서 복부하는 한 부사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연말 회식도 각 대대장의 허락을 받아 진행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과거 탄핵 때도 소비자심리 '꽁꽁'…정부 지원책도 기대난
통상 탄핵 추진과 같은 대형 정치적 이슈는 소비심리를 위축시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던 2016년 1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5.7을 기록하며 100을 하회했다. 약 한 달 후인 같은해 12월9일엔 탄핵소추안이 가결됐고, 2017년 1월엔 소비자심리지수가 93.3까지 하락하며 바닥을 찍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같은해 2월부터 재차 반등해 2017년 4월(101.2) 플러스로 돌아섰다. 소비자심리지수는 현재생활형편, 가계수입전망, 소비지출전망 등 6개의 주요 개별지수를 표준화해 합성한 지수로, 이 지수가 100을 밑돌면 소비자들의 심리가 비관적임을 뜻한다.
윤 대통령이 사실상 ‘버티기 모드’에 접어들면서 소비심리 악화에 따른 피해를 소상공인들이 고스란히 입을 거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온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9만8434명(채무액 규모 15조8873억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새 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5418명, 신청액은 8738억원이나 급증했다. 새출발기금은 빚 갚는 기간을 늘려주거나 연체이자를 깎아주는 식으로 부실차주의 재기를 돕는 제도다. 정국 불안이 한동안 지속할 경우 제때 빚을 갚지 못하는 소상공인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5일 ‘소상공인·자영업자 맞춤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는 등 취약 소상공인의 ‘금융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하지만 정치권이 탄핵 정국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행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도 크다. 오세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자신의 블로그에 “연말 대목은 소상공인 1년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시기인데, ‘12·3 윤석열 내란사태’ 이후 송년회 등 예약취소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12월에 대한 기대로 버텨온 소상공인들이 절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현승 기자 hsoh@segye.com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